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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ationalreview.com/2015/04/secret-roots-liberation-theology/amp/?fbclid=IwAR19ghJeqNfpxPS9PDIN9zHdri22ciGlAF5EnWve38l45rsgsZNum924Z94


https://www.nationalreview.com/2015/04/secret-roots-liberation-theology/amp/


The Secret Roots of Liberation Theology


해방신학의 비밀스러운 기원


By ION MIHAI PACEPA

April 23, 2015 8:00 PM


History often repeats itself, and if you have lived two lives, as I have done, you have a good chance of seeing the reenactment with your own eyes.


역사는 스스로 자주 반복된다. 그리고 당신이 나처럼 두 가지 인생을 살았다면, 당신은 역사가 재연되는 것을 당신의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고 있는 것이다.


Liberation theology, of which not much has been heard for two decades, is back in the news. But what is not being mentioned is its origins. It was not invented by Latin American Catholics. It was developed by the KGB. The man who is now the head of the Russian Orthodox Church, Patriarch Kirill, secretly worked for the KGB under the code name “Mikhailov” and spent four decades promoting liberation theology, which we at the top of the Eastern European intelligence community nicknamed Christianized Marxism.


20년 동안 거의 들어본 적 없는 해방신학이 뉴스에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해방신학의 기원은 언급되지 않는다. 해방신학은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 신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KGB가 개발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미하일로프”라는 코드명으로 비밀스럽게 KGB를 위해 일했으며, 40년 동안 해방신학을 퍼뜨렸다. 우리 동구권의 정보 기관 최고위급 사회에서는 그리스도교화된 마르크스주의라는 별명을 붙였다.


Liberation theology has been generally understood to be a marriage of Marxism and Christianity. What has not been understood is that it was not the product of Christians who pursued Communism, but of Communists who pursued Christians. I described the birth of liberation theology in my book Disinformation, co-authored with Professor Ronald Rychlak. Its genesis was part of a highly classified Party/State Disinformation Program, formally approved in 1960 by KGB chairman Aleksandr Shelepin and Politburo member Aleksei Kirichenko, then the second in the party hierarchy after Nikita Khrushchev.


보통 해방신학을 그리스도교와 마르크스주의의 결혼이라고 이해한다. 사람들은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한 그리스도인들의 산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쫓던 공산주의자들의 산물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Ronald Rychlak교수와 함께 저술한 “Disinformation”(허위정보)이라는 책에서 해방신학의 탄생을 기술했다. 해방신학의 탄생은 당과 국가가 아주 비밀스럽게 허위정보를 퍼뜨리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1960년에는 KGB 수장 알렉산드르 셰레핀과, 당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다음으로 서열 2위였던 정치국원 알렉세이 키리셴코가 이 계획을 정식으로 승인했다.


In 1971, the KGB sent Kirill — who had just been elevated to the rank of archimandrite — to Geneva as emissary of the Russian Orthodox Church to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The WCC was, and still is, the largest international religious organization after the Vatican, representing some 550 million Christians of various denominations in 120 countries. Kirill/Mikhailov’s main task was to involve the WCC in spreading the new liberation theology throughout Latin America. In 1975, the KGB was able to infiltrate Kirill into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WCC — a position he held until he was “elected” patriarch of Russia, in 2009. Not long after he joined the Central Committee, Kirill reported to the KGB: “Now the agenda of the WCC is also our agenda.”


1971년 KGB는 이제 막 대수도사제의 직급에 오른 키릴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러시아 정교회의 특사로서 제네바로 파견했다. WCC는 예나 지금이나 바티칸 다음으로 가장 큰 국제적인 종교조직으로, 120개 국가에서 다양한 교파에 속한 5억 5천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한다. 키릴/미하일로프의 주임무는 WCC가 새로운 해방신학을 라틴아메리카로 퍼뜨리는데 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1975년 KGB는 키릴을 WCC 중앙위원회에 침투시킬 수 있었는데, 그는 2009년 러시아 총대주교로 “선출”될 때까지 이 자리를 차지했다. WCC 중앙위원회에 합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키릴은 KGB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이제 WCC의 어젠다가 우리의 어젠다이기도 합니다.”


During Kirill’s years at the helm of the WCC, liberation theology put down deep roots in Latin America — where the map now has significant patches of red. Russian military ships and bombers are back in Cuba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1962 Cuban missile crisis, and Russia has also newly sent ships and bombers to Venezuela.


키릴이 WCC를 이끄는 동안, 해방신학은 라틴아메리카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이제 라틴아메리카는 지도에서 상당 부분이 빨갛게 칠해졌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군함과 폭격기가 쿠바로 진출했으며,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도 군함과 폭격기를 새롭게 파견했다.


Pope John Paul II, who knew the Communist playbook well, was not taken in by the Soviets’ liberation theology. In 1983, his friend and trusted colleague Cardinal Ratzinger (later Pope Benedict XVI), who at that time was head of the Vatican’s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Faith, discarded as Marxist the liberation-theology idea that class struggle is fundamental to history. The cardinal called liberation theology a “singular heresy” and blasted it as a “fundamental threat” to the Church.


공산주의자들의 각본을 잘 알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소련의 해방신학에 현혹되지 않았다. 1983년 그의 친구이자 신뢰하는 동료인 라칭거 추기경(훗날의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서 계급투쟁이 역사의 근본이라는 해방신학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라고 거부했다. 추기경은 해방신학을 “심각한 이단”이라 부르며, 해방신학을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라고 비난했다.


Of course, it was and remains a threat — one deliberately designed to undermine the Church and destabilize the West by subordinating religion to an atheist political ideology for its geopolitical gain.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해방신학은 위협이다. 해방신학은 지정학적 이득을 위해 종교를 무신론적 정치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킴으로써 교회를 약화시키고 서구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Now names — like Oscar Romero and Miguel d’Escoto Brockmann – not heard since the 1980s, when the Soviet Union was still en vogue, are again making international news. And here we are. The promoters of a KGB-inspired religious ideology, which once embraced violent Marxist revolution, are now denying its link to Marxism and to the KGB.


이제 소련이 아직 유행했던 1980년대 이후로 들어본 적 없는 오스카 로메로나 미겔 데스코토 브로크만과 같은 이름들이 다시 국제적인 뉴스가 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다. KGB의 종교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이들은 한때 폭력적인 마르스크주의 혁명을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해방신학과 마르크스주의와 KGB와의 연계를 부정하고 있다. 


Each society reflects its own past. Down through the ages, everyone who has sat on the Kremlin throne — autocratic tsar, Communist leader, or democratically elected president — has been preoccupied with controlling all expressions of religion that might impinge on his political ambitions. When Ivan IV — the Terrible — had himself crowned in 1547 as Russia’s first tsar, he also made himself head of the Russian Orthodox Church. Tsarism and Communism may have been swallowed up by the sands of time, but the Kremlin continues this tradition.


모든 사회는 각각 그 과거를 반영한다. 시대를 따라 내려오면, 전제군주였던 차르건 공산지도자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건, 크렘린 궁의 왕좌에 앉은 모든 이가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에 방해가 될만한 모든 종교적인 표현을 통제하는데 혈안이 되어왔다. 이반4세(이반 뇌제)는 1547년 스스로 러시아 최초의 차르(황제)로 즉위할 때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도 겸임하기로 했다. 차르의 전제통치와 공산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크렘린은 이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Throughout its history, Russia has been a samoderzhaviye, a traditional Russian form of totalitarian autocracy in which a feudal lord rules the country and the church with the help of his political police force. The latter, whenever it had a sticky image problem, simply changed its name — from Okhrana to Cheka, to GPU, to OGPU, to NKVD, to NKGB, to MGB, to MVD, to KGB — ­and pretended it was a brand new organization.


역사를 통틀어 러시아는 samoderzhaviye였다. 봉건 영주가 경찰력의 도움으로 국가와 교회를 다스리는 전통적인 러시아의 전체주의 독재체제인 것이다. 경찰력은 이미지 문제가 끈질기게 달라붙을 때마다 단순하게 이름을 바꿨다. 오크라나에사 체카로, GPU로, OPGU로, NKVD로, NKGB로, MGB로, MVD로, KGB로. 그리고 마치 새로운 조직인 척했다.


Many deceased KGB officers must have been chortling in their graves on New Year’s Eve, 1999, when their old boss, Vladimir Putin, at one time my KGB counterpart, enthroned himself in the Kremlin. During the Cold War, the KGB was a state within a state. Now the KGB — rechristened FSB — is the state itself. According to a study published in the Russian newspaper Novaya Gazeta, by 2003, some 6,000 former KGB officers were running Russia’s federal and local governments. The respected British newspaper the Guardian reports that President Putin has secretly accumulated over $40 billion, becoming Europe’s richest man.


1999년 새해 전날, 자신들의 상사였던 푸틴이 스스로 크렘린의 왕좌에 앉았을 때 많은 KGB 요원들이 무덤에서 낄낄거리며 웃었을 것이 분명하다. 푸틴은 한때 나의 KGB 카운터파트였다. 냉전 시기에 KGB는 국가 안의 국가였다. 이제 FSB라는 이름으로 바뀐 KGB는 국가 그 자체다. 러시아 신문 Novaya Gazeta의 연구에 따르면, 2003년까지 6천명 가량의 전직 KGB 요원들이 러시아 연방과 지방 정부를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존경받는 영국 신문인 가디언은 푸틴이 400억 달러 이상의 부를 몰래 축적하여 유럽 최고의 부자가 됐다고 보도했다.


In Russia, the more things change, the more they seem to stay the same.


러시아에서는 더 많은 것들이 변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그 상태로 머무르는 것 같다.


This brings us back to Kirill/Mikhailov. In 2006 Archbishop Kirill’s personal wealth was estimated at $4 billion by the Moscow News. No wonder. In the mid-1990s, the Russian Orthodox Church’s Department for External Church Relations, managed by Kirill, was granted the privilege of duty-free importation of cigarettes as reward for his loyalty to the KGB. It did not take long for him to become the largest supplier of foreign cigarettes in Russia.


이는 우리에게 키릴/미하일로프를 다시금 기억나게 한다. Moscow News는 2006년 키릴 대주교의 개인 자산을 40억 달러로 추정했다. 1990년대 중반에 키릴이 관리하던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의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부서는 키릴이 KGB에 충성해온 대가로 면세수입담배를 판매하는 특권을 얻었다. 키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최대의 수입담배 판매상이 되었다.


A few years ago, while Kirill was visiting Ukraine as the new Patriarch of Russia, a newspaper published a photo in which the prelate could be seen wearing a Breguet wristwatch, the price of which was estimated at 30,000 euros. The Russian newspaper Kommersant accused Kirill of abusing the privilege of duty-free importation of cigarettes, and dubbed him the “tobacco metropolitan.” Kirill denied having such a watch. He said the photograph must have been altered by his enemies, and he posted the “real” photograph on his official website. A careful study of this “real” photograph, however, shows that the Breguet watch had been airbrushed off his wrist, but its reflection is still clearly visible on a table surface beneath his arm.


몇년 전 키릴이 새 러시아 총대주교로서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때, 한 신문이 3만 유로로 추정되는 브레게 손목시계를 찬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러시아의 Kommersant 신문은 키릴이 면세담배를 수입하는 특권을 남용했다고 비난하면서 “담배 대주교”라는 별명을 붙였다. 키릴은 그런 시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는 정적들이 사진을 바꿔치기 한게 분명하다며, “진짜” 사진을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러나 세심하게 연구한 결과 “진짜” 사진에서 시계가 손목에서 지워졌지만, 키릴의 팔 밑에 있는 테이블 표면에는 손목 시계가 여전히 선명하게 비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Mikhailov and his KGB, rechristened FSB, are now doing their best to airbrush out the apron strings connecting them to liberation theology. Let’s not allow them to succeed.


미하일로프와 FSB로 이름을 바꾼 그의 KGB는 이제 자신들과 해방 신학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증거를 감추려고 한다. 이들이 성공하지 못하게 막읍시다.


— Lieutenant General (retired) Ion Mihai Pacepa is the highest-ranking Soviet-bloc official ever to defect to the West. His last book, Disinformation, co-authored with Professor Ronald Rychlak and published by WND, is currently being made into a Hollywood movie.


- Ion Mihai Pacepa 중장(퇴직함)은 동유럽 공산권에서 서방으로 망명한 인사들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Ronald Rychlak교수와 함께 쓰고 WND에서 출판된 그의 최신작 “Disinformation”은 현재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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